남편이 돌아왔다. 8년 만이다. 모두가 죽었다고 했던 사람이다. 풍랑에 배는 박살 나고 선원들은 거진 다 죽은 그 끔찍한 사고로부터 장장 8년이나 지났으니 시체를 찾지 못했어도 주위에서 그를 죽은 사람 취급하는 것도 당연했다. 참상이었고 악상(惡喪)이었다. 시부모마저도 남편을 죽었다 여기라 했다. 그래도 남편은 돌아왔다. 오랜 기다림 끝에 낭군이 돌아오...
알람 소리에 눈을 떴을 때부터 그는 위화감을 느꼈다. 무의식중에 손을 뻗어 끄긴 했지만 시계 위치가 평소와 달랐다. 다시 생각해보면 소리도 달랐을 것이다. 옆자리가 빈 것을 처음에는 남편이 먼저 일어난 것으로 알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몸에 남아있는 잠기운에 뒤척이다가 그는 자신이 누운 침대가 더블베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그제야 눈을 떴다. 눈곱이 ...
2017년 서울의 한 호텔에서 모임이 있었다. 그 날은 그 또는 그녀가 처음으로 모임에 데뷔를 한 날이었다. 긴장은 하지 않았다. 그 또는 그녀는 태생부터 주목을 받던 존재였다. 참석자들이 다들 대단한 인물들이라 해도 모임에 처음 참석하는 이가 가장 관심을 받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라운지에 들어선 순간 대단한 착각임을 알았다.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
여자는 기어가는 남자의 등에 칼을 꽂았다. 서 있으면 그녀보다 머리 하나 더 클 남자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집안에서 습격을 당한 뒤 남자는 계속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었다. 덩치는 남자가 크나 상황을 반전시키지 못했다. 손에 흉기가 들려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도 클 것이다. 여자는 오늘을 위해 꾸준히 몸을 단련했다. 남자가 덤벼들라 치면 그녀는 손에 든...
“역시 디피된 상품은 좀 신경 쓰이지 않아?” 내 말에 재웅이가 나를 돌아보았다. 녀석은 막 맘에 드는 냉장고를 고른 참이었다. 알아. 이제 와서 딴소리 하는 거. 집에서 합의를 끝내고 온 거지만 막상 계산을 하려니 찝찝해서 말을 꺼낸 거다. 재웅이는 뭐가 문제냐는 얼굴로 대꾸했다. “너 꽝 잘 뽑잖아. 와서 직접 보면 사이즈도 확인할 수 있고 전시용 상품...
엄마가 그랬지. 대학 가면 살도 빠지고 예뻐져서 남자친구도 생긴다고. 그리고 대학교 3학년이 되도록 안 생겼다. 살이 드라마틱하게 빠지지도 않았고 의술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크게 예뻐지기도 힘들 것 같다. 고등학생 땐 교복을 입었으니까 그래도 치마를 입고 다녔지만 요즘은 트레이닝복이 내 교복이다.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기엔 학교와 집만 오가니 기회도 없다...
김 씨는 그 날 자신의 집에서 맥주를 마시려던 참이었다. 퇴근 후 집에서 혼자 맥주 마시기는 회사에서 쌓였던 피로를 풀어주는 좋은 취미였다. 대학생 시절 혼술을 들켰을 땐 시집도 안 간 처녀가 무슨 아저씨처럼 혼자 술 마시냐고, 살찐다, 알코올 중독증 걸린다는 잔소리를 들었지만, 이제는 혼자 사니 거리낄 게 없었다. 텔레비전 앞에서 맥주에 마른안주까지 챙겨...
“야. 우리 햄스터는 올해로 12살인데?” 동거인의 말에 나는 긴장으로 얼어붙었다. 동거인 친구네 개가 10살이랄 때부터 불안하긴 했는데 급기야 나와버렸다. 진작 가서 컴퓨터 전선을 갉아버렸어야 했는데. 동거인은 햄스터를 키워본 적이 없어서인지 내 수명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지만 모든 인간이 저 인간처럼 무신경한 것은 아니다. 햄스터 수명은 최대 2년이다. ...
※cookie님께서 신청해주신 키워드 커미션입니다.※이 소설의 내용은 실제 역사 인물 및 사건과 관련 없습니다. “말이 되냐.” 짧은 침묵 끝에 준우가 말했을 때 정건은 제가 다 아쉽다고 생각했다.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으니 말이 안 되는 소리긴 했다. 장소야 어디를 가서든 하면 된다고 치자. “무대를 어떻게 해. 여기는 장비도 뭐도 없잖아.” 프레셔스 멤버...
※cookie님께서 신청해주신 키워드 커미션입니다.※이 소설의 내용은 실제 역사 인물 및 사건과 관련 없습니다. 정건은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고민했다. 그리고 제가 마음이 있어서 제현이 한 말을 멋대로 받아들인 건 아닐까도 고민했다. 얼굴이 빨간 거야 열 때문일지 모른다만 저를 피해 시선을 아래를 향하고 있는 건 아무리 봐도 고백 후 부끄러워하는...
※cookie님께서 신청해주신 키워드 커미션입니다.※이 소설의 내용은 실제 역사 인물 및 사건과 관련 없습니다. “내 네를 별해 당당하나 션인긔셔 원하시어니 용셔하난다. 알프로는 이런 일이 업사야 할 고디니 또 네의 가새야 낟븐 즛을 비슨 띄난 용셔치 아니할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엄숙한 얼굴로 선언하고는 최우는 방에서 나갔다. 지옥 같던 시간이 끝난...
※cookie님께서 신청해주신 키워드 커미션입니다.※이 소설의 내용은 실제 역사 인물 및 사건과 관련 없습니다. 왠지 모를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차를 마신 두 사람은 찻집을 나와 큰 길을 걸어 올라갔다. 성까지 가는 길은 멀었지만 자신들을 위해 하는 일이니 정건은 불평할 수 없었다. 내가 고려 궁궐을 보는 유일한 남한 사람이 될 텐데 이 정도 고생쯤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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